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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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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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찰리 커크(Charlie Kirk), 31세 미국 청년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에 미국과 한국의 많은 국민 애도하고 있다. 그는 성경적 크리스천이고 보수적 가치를 가진 젊은이였다. 그런데 나는 그의 이름을 보자마자 그의 성(Family name)이 커크(Kirk)라면 그는 언약도(Covenanters)의 후예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Kirk는 스코틀랜드 말로 ‘교회’를 뜻하기에 그의 조상은 스코틀랜드에서 목사 혹은 교회에 속한 사람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나의 짐작은 곧 사실로 확인되었다. 지난달에 “스코틀랜드 언약도 역사 탐방”을 함께 간 멤버 중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황성준님이 있었다. 그가 얼마 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빌드업 코리아 2025’ 행사에 참석했다가 찰리 커크를 만나 직접 대화했는데 찰리의 선조가 스코틀랜드에서 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언약도들은, 서창원교수의 책 제목처럼, 죽었으나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지금 언약도의 후예, 31살의 청년 찰리 커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를 즉시 16세기와 17세기의 신앙 유산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는 찰리의 선조 스코틀랜드 신자들과 언약도들이 성경적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희생당한 사실을 상기해 보자.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이른 나이에 순교한 사람으로는 패트릭 해밀턴이 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그는 루터와 멜란히톤의 영향을 받아 학생들에게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는 개혁주의 신앙을 가르쳤다. 결국 가톨릭교회는 그를 이단자로 결정했고, 해밀턴은 1528년, 고작 스물넷의 나이에 세인트앤드루스에서 화형당했다. 가장 젊은 나이에 화형당한 해밀턴은 스코틀랜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 외에도 스코틀랜드에서는 다 열거할 수 없도록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잔인하게 화형당했다.
언약신앙을 지키려다가 대량으로 참혹한 죽음을 당한 것은 킬링 타임(Killing Times)으로 불리는 1680년부터 1688년이다. 1638년의 ‘국민언약’, 1643년에 잉글랜드와 맺은 ‘엄숙동맹 및 언약’, 1643~1649년에 런던에서 열린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통해 교회 개혁은 마무리된 듯싶었다. 하지만 1660년에 즉위한 찰스 2세는 언약을 깨뜨리고 감독정치를 부활시켰다. 언약도 목사들은 쫓겨났고 언약도 교회(the Covenanted Kirk) 예배는 불법이 되었다. 그러다가 1679년 보스웰 브리지(Bothwell Bridge) 전투에서 정부군에 참패한 1,200명의 언약도들은 모두 ‘지붕 없는 감옥’ 등에 갇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생존자들은 노예선으로 팔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믿음을 지키려다가 비참하게 죽어간 것은 스코틀랜드 언약도들만의 일이 아니다. 프랑스 칼빈주의 신자는 ‘위그노’라 불리는데 이들도 종교개혁 시기에 100년 넘는 기간 동안 차별받고 박해받으며 죽어갔다. 특히 1572년의 바돌로매 대학살 때는 프랑스 전역에서 수만 명이 단지 개신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되었다. 학살당한 신자의 수는 학자마다 다르게 추정하는데 많게는 8만 명까지 주장되고 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스위스와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으니 그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다 짐작할 수가 없다.
거슬러 초대교회 시대에 얼마나 많은 신자가 로마의 박해를 받아 산채로 맹수의 밥이 되거나 화형당했는지 일반 역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려져 있다. 특히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서 유세비우스는 313년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하기 직전에 로마 총독들은 사람을 죽일 때 얼마나 잔인하게 고문할 수 있는지 경연대회를 여는 것과 같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사도행전을 통해 사도바울의 행적을 살피며 그의 믿음의 고백을 보노라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보다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쓰러졌고 사람들은 그를 도시 밖으로 끌어다 버렸다. 그때 사람들은 바울이 죽은 줄로 알았으나 그는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또 바울은 빌립보에서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다. 그 외에도 바울이 얼마나 사선(死線)을 넘은 순간이 많았는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여러 번” 죽을 뻔하였다고 고백한다. 그러고도 바울은 사도행전 20:24에서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되고 사람들의 수명이 늘자 마치 죽음은 나와 관계없는 것 같은 착각이 생겼다. 그런 중에 찰리 커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면서 그의 선조 언약도들과 종교개혁 시기 위그도들, 거슬러 초대교회 신자들의 죽음까지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 땅에서 더 오래 더 편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적 믿음을 지키며 전하다가 예수님의 나라에 꼭 가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최광희 / 목사, 설교학박사, 행복한교회, 17개광역시도악법대응본부(악대본) 사무총장, 모든성경의신적권위수호운동협회(성수협) 운영위원, 한국교회반동성애교단연합(한반교연)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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