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이웃사랑, 그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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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이웃사랑, 그 열매
나는 앞서 “기독교인의 함정, 이웃사랑!”이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이웃사랑에 대한 화두는 모든 종교를 통합하게 하고 불신자들도 감동을 받으며 목사가 어떠한 설교를 하였든지 “이웃사랑”으로 귀결이 되면 사랑 많은 목회자로, 성경을 실천하는 목회자로 믿어 준다, 고 논한 바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웃 사랑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되고 원하는 그 이웃사랑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게 쉽게 이웃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마음을 사게 되면 성경을 지키는 것이고 구원에 이르는 것일까? 라는 물음을 던졌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우리가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할 대상은 죄와 사망의 권세 잡은 자 마귀(강도)의 사슬에 매여 종노릇 하는 우리(강도 만난 자)를 구원해 주신 사마리아인(강도 만난 자의 이웃)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 고 하였다. 사랑의 방법은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불편해도 그대로 믿고 그대로 행하며 증거 하는 것이 우리의 이웃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라 하였다.
본 글 “성경적 이웃사랑, 그 열매”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서는 강도(마귀)만난 자(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에 힘입어 그와 연합이 된 상태가 되면 어떠한 열매를 맺게 되는지, 성경적 이웃사랑이 기존의 윤리나 도덕적인 이웃 사랑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씀에 비추어 밝혀보고자 한다.
1.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기준, 열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도록 기준을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열매다. 열매는 감출 수가 없다. 열매가 그 존재를 말하며 숨길 수 없는 그 의도를 드러낸다. 어떤 경우에는 당장에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시차만 있을 뿐,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5-20)
2. 하나님 사랑, 숨겨진 의도
성경 전체의 가르침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행위적인 것보다 숨은 의도를 갖고 평가하신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이 어떤 일을 행한 후에 숨겨진 의도를 아무리 감추고자 할지라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시는 과정을 통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당시에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대적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보응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명하신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다. 그러나 그는 승리 후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멸하라 명하신 말씀을 거역하고 가장 좋은 것들을 살려둔다. 오히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삼상15:12)”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하여 왜 그리하였느냐고 책망을 할 때 거짓말과 핑계로 하나님을 모독한다.
“사울이 이르러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삼상15:15)
사울의 이와 같은 모습을 통해 아담의 범죄 이후에 모든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죄의 전형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에 대해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예외로 하고 타자에게 전가시키며 이는 곧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변명으로 이 죄의 유전은 오늘을 사는 모든 인간에게도 동일하다. 문제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같으나, 자기를 위하는 것과 자신이 높임을 받고자 하는 숨은 의도를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 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삼상15:30)
사울은 자신이 범죄 하였을지라도 피조물인 인생들 앞에서 자신을 높여달라고 사무엘에게 요청한다. 또한 자신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무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사울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자 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사울의 이야기만으로 끝이 난 것일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오늘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3. 이웃사랑을 넘어 애국, 애족, 애민을 할지라도
우리나라 백성들은 세계 민족가운데 특별함이 많다. 그 중에서도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투철하다. 피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민족을 귀히 여기는 애족하는 마음도 세계적이다. 정치가들은 어떠한가, 백성을 사랑하여(?) 잘 살게 해주겠다는 일념(?)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로 인해 백성들은 하루하루 지옥을 살고 있다. 이것이 진실한 것인지 분별하도록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와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약3:13-16)
애국 애족하는 수많은 국민이 그토록 광장에 나가 기도하고 부르짖는데도 대한민국이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도자들이 사울과 같은 의도를 갖고 자기를 높이기 위한 기회로 삼는다면 이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며 정욕을 위한 것이고 귀신이 좋아하는 일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상태가 아닌, 윤리나 도덕적인 측면의 행위들은 그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다. 이것이 성령의 일인지, 개인의 육신을 위한 일인지 분별해야 한다. 애국 애족을 말할지라도 눈물겹도록 헌신하는 것 같을지라도 우리가 기도하여 정권을 잡을 것이니, 또는 잡았으니 지분을 나눠줘야 한다는 것은 성령의 일이 아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인간의 탐욕과 탐심을 채우는 또 다른 형태의 우상숭배일 뿐이다. 이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위한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며 한 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자 모인 그리스도인들을 자신들과 함께 모이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원수와 같이 여기는 일들도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일들은 분명한 열매가 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3:17-18)
4, 결론
이웃사랑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전부로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주님을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그 사랑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을 위해 우리도 찾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전부로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그와 같이 사랑해야 한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10:33-37)
우리의 이웃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사랑하면 윤리나 도덕적인 측면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며 그 열매가 분명하다. 그 열매는 자기의 기념비를 세우기 위한 것이 될 수 없다. 자기의 뜻을 이루고 영광을 누리기 위하여 백성을 이용할 수 없다. 탐욕과 탐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람을 이용할 수 없다. 조건부적인 그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자기의 것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것으로 행한 것이기에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 드린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의 죄의 값을 지불하셨기에 모든 주권과 소유가 하나님께 있음을 삶으로 고백한다.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고요와 평화를 누리게 된다.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빛의 열매(엡5:8)와 성령의 열매(갈5:22)를 맺는다. 사람들이 임금 삼으려 할 때는 더욱 하나님께로 피한다. 이것이 성경적인 이웃사랑이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요6:14-15)
박온순 목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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