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강호식 목사님의 살아 있는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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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제 인생에서 하신 일 중에서 “하나님 만이 홀로 영광 받으소서”
강호식 목사 – Community Methodist Church in Great Bend, Pennsylvania. USA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고국 방문은 언제나 특별한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예전보다 삶의 형편이 나아지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해도, 여전히 14시간이 넘는 긴 비행은 시간과 비용 면에서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늘 고국을 향해 있습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는 순간부터 가슴은 두근거립니다. “무엇을 먹을까? 어디를 가볼까? 누구를 만날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여행을 상상을 합니다. 그 설렘은 밤 잠마저 빼앗아 가지만, 기다림은 오히려 즐거운 예행연습이 됩니다.

2022년 4월, 그리운 마음을 안고 아내와 함께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3년 전의 그날, 설레는 고국 방문이 우리 부부에게 엄청난 시련으로 다가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공항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제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영어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3주간 교회를 비우기 위해 출발 전까지 준비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고, 피곤함이 쌓인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오랫동안 준비했던 모든 일정은 제 몸의 이상과 함께 도착 동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몸 상태가 악화되어 처가가 있는 진주의 작은 종합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검진과 CT, MRI 촬영을 마치고, 의사는 다음 날 오전에 결과를 들으러 오라고 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담당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저와 아내를 번갈아 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목사님,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긴급 예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서울로 가셔서 정밀 검사를 다시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조용히 충격적인 말을 이어갔습니다. “목사님의 간에 두 개의 종양이 보입니다.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장으로까지 전이되어 장간막에 암이 생겼습니다. 안타깝게도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시기는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순간 제 아내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선생님…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의사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힘겹게 대답했습니다. “3개월, 길어야 6개월 정도입니다. MRI와 CT 사진을 드리겠습니다. 일단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설렘으로 시작된 고국 방문이 하루아침에 인생의 가장 깊은 시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예약이 잡혀, 아내와 함께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저는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이 순간까지 살아온 64여 년의 시간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기쁨의 순간도 있었고, 깊은 슬픔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도저히 견디기 어려웠던 고난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인생의 순간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단 1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속에 떠오른 고백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삶의 길을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곧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지만, 제 마음에 찾아온 것은 두려움도, 원망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감사였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진실한 감사. 가식도, 형식도 아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순전한 감사가 제 영혼 깊은 자리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감사는 마치 따뜻한 강물처럼 제 안을 채워 주었고, 고통과 불안마저도 잊게 만들었습니다. 삶의 마지막 길목에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감사’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이 이렇게도 감사한 일이었군요. 육신을 벗고 영광의 품에 안긴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것인지…”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옆에 앉아 있는 아내가 보였습니다.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아내는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늘 이 순간까지, 오직 남편인 저만 바라보고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조차 없이 헌신해 온 아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민 목회의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영어가 서툴러서 실수할까 전전긍긍하는 저를 위해 밤마다 눈물로 기도하던 아내, 부족한 사례비로는 생활이 버거워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양로원에서 노인들을 돌보고, 세탁소에서 땀 흘리며 남편의 사역을 지탱해 주던 아내였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곁을 지켜 준 아내를 두고 나 혼자 먼저 하나님께 간다고 생각하니, 미안함이 몰려왔습니다. 홀로 남게 될 그녀가 너무도 안쓰럽고 불쌍했습니다.

“내가 없으면 아내는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없으면 안 되는데…” 그 생각이 가슴을 찢듯 아파왔습니다. 그렇기에 제게 남은 시간이 비록 3개월뿐이라 해도, 그녀가 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이 제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저는 제 병을 고쳐 달라고 한 번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가지 기도만이 제 입술에서 흘러나왔습니다. “하나님, 제 아내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고, 그 방법을 알려 주옵소서.”

저녁 무렵, 우리는 서울 양평동의 작은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방에 들어서자 두 사람은 말없이 각자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제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한 날부터 이어진 심한 두통과 아랫배의 통증은 열흘이 넘도록 멎지 않았고, 의사가 처방해 준 약으로도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홀로 남게 될 아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제 곁에 앉아 있던 아내는 정반대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제 병이 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서 제 생명을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습니다. 동기 목사님들에게, 친구들에게, 그리고 원천교회의 박온순 목사님에게도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모든 목사님들이 기도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동기들의 간절한 기도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박온순 목사님의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큰 위로와 희망이 되어 주었습니다.

목사님들의 기도가 들은 후 아내는 제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목사님들의 기도를 들으셨을 거예요.” 그러더니 제 아픈 배 위에 손을 얹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낮고 떨리는 기도를 들으며 제 마음은 점차 편안해 졌고, 마침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새벽 4시 무렵, 중얼거리는 소리에 눈을 저는 떴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까지도 아내가 여전히 제 배 위에 손을 얹은 채, 그대로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몇 시간을 그렇게 기도한 것일까요? 저는 아내의 손을 붙잡으며 속삭였습니다. “여보, 이제 그만해요. 하나님께서 분명 당신의 기도를 들으셨어요. 안심하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요.” 순간 순간 잠깐이라도 제 마음을 파고 들었던 불안과 두려움이 잦아들고, 오직 한 가지 감정만이 제 안에 남았습니다. 그것은 감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곁에 아내를 두셨다는 것, 그리고 그 아내가 밤새도록 기도하며 제 생명을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저는 가장 큰 기적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곧장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지하철과 택시를 번갈아 타고 병원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제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습니다. 하나님 품으로 간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제게 더 이상 자리하지 않았습니다. 복도에는 수많은 환자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얼굴들이었고, 각자의 고통을 안고 의사의 진단을 기다리는 표정들이었습니다. 그 속에 저와 아내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진주에서 가져온 CT와 MRI 사진을 본 두 명의 의사는 차분히 말을 이었습니다. “사진상으로는 이미 간에 두 개의 큰 종양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으로도 전이가 진행된 상태입니다. 상황이 결코 단순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세브란스에서 다시 정밀 검사를 해 보아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합니다.” 이미 익히 들었던 소식이었기에, 다시 큰 충격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곧바로 세브란스에서 MRI와 CT 검사를 받고, 일주일 후 결과를 듣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병원을 나설 때, 제 마음은 이미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이미 들으셨고, 제 병은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되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날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열흘 넘게 괴롭히던 심한 두통과 아랫배의 고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도 아내는 여전히 제 배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음을 제 영혼이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일주일이 지나 다시 세브란스를 찾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우리가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의사들은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말했었지만, 우리 마음은 이미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우리는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검사 결과를 전해 주는 의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목사님 놀라지 마십시요,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았는데, 간에서 보이던 종양이 사라졌습니다. 장으로 내려가던 혈류도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현재 상태는 완전히 정상입니다. 약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다만 소견서를 드릴 테니, 돌아가셔서 검진을 한 번 더 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미 이 땅에서의 삶은 내려 놓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과 감사가 있었기에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내의 기도를, 박온순 목사님의 기도를, 그리고 함께 무릎 꿇어 준 동기 목사님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제 간과 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은혜요, 감사의 날들입니다. 부족한 제 이야기를 “사랑과 공의 뉴스” 지면을 통해 나눌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를 통해 드러내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이야기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시기를, 영광의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 인간의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그 하나님을 오늘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5-09-27 02:00:08 목회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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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식 목사님은 UMC 소속 정회원 목사로 섬기던 중, 동성애 문제로 UMC를 탈퇴하였습니다. 감독은 규모가 있는 교회의 담임자로 파송할테니 나가지 말 것을 권유하였으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탈퇴한 것입니다. 주의 종을 신뢰하는 성도들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해주어 현재 위와 같이 교회를 섬기는 분입니다.

강호식 목사님은 우리 원천교회에서 평신도(권사)로 섬기던 중 영혼 구원의 거룩한 소망을 품고 세상의 좋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주의 종이 되셨습니다. 원천교회  출신의 신실한 여러분의 목회자들 중에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목회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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