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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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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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무너지면 교회도 나라도 망한다-
판사들이 공정하게 판결하지 않고, 이념과 정치편향, 판사의 지인인지 아닌지, 이익여부 등에 따라서 판결이 달라진다면, 이는 법치(法治)주의가 아니라 인치(人治)주의, 혹은 사법농단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보통은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로 인해 멸망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야살의 책을 읽어 보면 동성애는 부패한 소돔과 고모라의 하나의 현상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소돔과 고모라는 법과 정의가 무너진 무법천지였으며, 그 중심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부패한 재판관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살의 책 19장에 묘사되는 소돔과 고모라의 실상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세락(Shakra)’, ‘샤르카드’, ‘사브낙’, ‘메논’이라는 4명의 재판관이 있었다.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은 나그네가 오면 거리의 '침대'에 강제로 눕히고, ‘6명이 양쪽 끝에서 몸을 늘이거나 조여 죽을 때까지 고문’했다. 한마디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놀이처럼 생각할 정도로 악이 창궐해 있었다.
피해를 당한 사람이 재판관들에게 피해를 호소하면 “네가 판사냐”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두들겨 패고, 그 후 재판관에 의해 강제로 그 피해가 정당화되며 다시 폭행을 조장당하는 등, 사법체계 자체가 악인들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이런 모습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게 되었다.
야살의 책에서 뿐 아니라 정경에서도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창세기 18~19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소돔의 심판을 예고하시며, “그 성읍에서 죄악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가 심히 무거움이라”(창 18:20)고 말씀하셨다.
에스겔서 16:49에서는 소돔의 죄를 보다 사회정의적 관점으로 설명한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한 평안이 있으며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그들이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겔 16:49-50)
즉, 동성애는 하나의 결과적 현상일 뿐이고, 그 사회는 이미 법적 정의·공의·도덕의 붕괴로 철저히 무너져 있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의 법을 집행하고 판결하는 판사나 관리들이 부패하면, 백성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호소할 곳도 없게 되어 애통이 터지게 되고, 그 사회는 망하게 된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만일 이런 일이 교회에서도 일어 난다면 어떨까?
올해 초, 나는 결혼 후 지금까지 다녔던 익산의 한 감리교 목사에 대해 감리교 이단대책위원회에 이단성 조사를 요청했다.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가난하고 소외된 곳에는 성령이 임한다는 해방신학적인 설교를 했는데, 심지어 이슬람 교도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신다는 취지로 설교를 했다. 이는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만인 구원론으로 연결되는 이단적인 설교였다.
나는 이 설교를 듣고 그 교회 장로들에게 목사의 설교가 무척 위험한 이단적 사설임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장로들은 "우리가 듣기에는 은혜스럽기만 한데 당신이 열심히 목회하는 목사를 훼방한다"면서 나를 비난하고 배척하였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목사를 감리교 이단대책위원회에 이단성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단대책위원회 위원들이 나의 제소장을 받아 보기도 전에, 감리교 교육국의 한 목사가 나의 서류를 읽어 보고는, 이런 내용은 호남연회에서 해결할 문제라면서 서류를 반송하였다. 나중에 어떤 목사님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내 서류를 반송한 교육국 목사들 중에는 내가 제소한 목사의 같은 학교 동문 선배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같은 동문이어서 내 서류를 반송했는지는 명확치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호남연회 익산지방 감리사에게 다시 이단심사요청서를 보냈는데, 그 감리사는 해당 목사의 설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내게 다시 서류를 반송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 감리사에게 전화를 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심지어 이슬람에게도 성령님이 임하신다고 설교해도 전혀 이단성이 없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감리사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심지어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성령님이 임하실 수 있습니다. 이 설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라고 내게 답변하였다.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었다. 이런 자들이 목사이고 감리사라니...
그래서 이번에는 호남연회 감독에게 이런 설교를 한 목사와, 목사를 두둔하는 감리사를 조사해달라고 진정했다. 그랬더니 호남연회 감독은 감리사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므로 이 사건을 덮어 두고 종결하겠다고 내게 통보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대로 가면 감리교단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감리교 본부에 호남연회감독의 이단 옹호문제를 제기하면서 징계를 요청했으나, 감리교 본부에서는 지금까지도 묵묵부답이다. 이단을 옹호하는 것은 분명히 감독의 징계사유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조사를 할 의향도 없을 뿐 아니라, 아예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담당자의 심각한 직무유기이다. 아마도 감독의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두고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공정하지 않은 제도나 불리한 구조를 지적할 때 사용하는 비유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감리교단의 현실은 단순히 운동장이 기울어진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와 저울이 동시에 기울어진 현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함에도, 오히려 세상보다도 더 공의와 정의가 형편없이 무너진 모습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다행히 올해 11월에 감리교 본부 이단대책위원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이번에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덮어버린다면, 감리교 지도부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들을 오래 참고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재판을 공정히 하라.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신 1:17).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암 5:24).
나는 이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싸울 것이다. 감리교 지도부가 더 이상 이단을 덮어주고 불의한 판결을 반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와 교단의 멸망은 소돔과 고모라의 길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완구 권사(맑은샘내과 원장/의학박사)
추신; 이 글은 감리교단의 바른 신앙과 공의를 세우기 위한 글이며, 특정인을 모욕하거나 비방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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