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들어선 다메섹 제단과 W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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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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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 제단과 수건에 싸인 므나가 던지는 경고-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누가복음 19; 20-21)
남유다의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타락했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아하스와 므낫세다. 므낫세는 훗날 바벨론으로 끌려간 뒤 하나님께 회개라도 하였지만, 아하스는 끝까지 우상숭배와 배도의 길을 가다가 회개도 못하고 죽게 된다.
열왕기하 16장에 등장하는 아하스는 20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뒤 못된 짓만 일삼았다. 조상 다윗의 길이 아닌 이스라엘 왕들을 본받아 이방 신들을 섬겼고, 심지어 자기 자식들을 몰렉에게 제물로 태워 바치는 짓조차 서슴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의 침략을 받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참혹했다. 북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단 하루 만에 유다 군인 12만 명이 전사했고, 왕자와 궁내대신, 총리대신 등 왕실 수뇌부가 궤멸되었으며, 무려 20만 명의 부녀자와 아이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나라가 이 지경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무너지자 아하스는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목놓아 외치던 선지자 이사야의 권면을 짓밟고, 성전의 은금을 긁어모아 신흥 강대국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나는 왕의 신복이요 아들이니 와서 살려달라"며 구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다메섹에 도착한 아하스의 눈에 화려한 대제단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역대기 기자는 당시 아하스의 속마음을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라는 구절로 날카롭게 폭로한다. 자신들이 참패한 이유가 하나님을 버린 죄 때문임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나를 박살 낸 걸 보니 아람의 신이 여호와보다 훨씬 힘이 센가 보다"라는 실용주의적 착각에 빠져버린 것이다. 결국 아하스는 아람의 신전 양식을 본떠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우리야에게 도면을 보냈고, 그 도면을 받은 제사장 우리야는 "아무런 이의도 없이" 아하스가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도 전에 도면대로 제단을 만들었다. 성전에 있던 하나님의 청동 제단을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이방 제단을 세웠던 것이다.
위기 앞에서 본질을 놓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린 인간이, 자신을 무너뜨렸던 세상의 방식과 우상을 도리어 적극적으로 신봉하게 된 비참한 영적 비극을 열왕기하 16장을 통해 잘 볼 수 있다.
이 구약의 비극은 예수님이 들려주신 ‘열 므나의 비유’(누가복음 19장) 속 사람들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한다.
비유 속에서 왕위를 받아오기 위해 떠나는 귀인을 향해 백성들은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라며 사자를 보내 통치를 거부했다. 오직 예수 한 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복음의 절대적 진리와 십자가의 좁은 길을 세속과 타협한 교회가 얼마나 불편해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 특히 감리교단의 풍경은 이 역사적 비극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
복음의 순수성과 성경적 거룩함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교단이, 세상 사상과 타협하며 종교 간 평화라는 미명 아래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허황된 논리를 용인하는 WCC(세계교회협의회)의 굴레에 여전히 매여 있다. 최근 기독교대한감리회 제37차 총회가 서울 광림교회에서 개최되었다. "창조·생명·평화: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감리교회"라는 거창한 주제를 내걸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교단 내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WCC 탈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총대 243명이 서명한 건의안을 제출했으나, 집행부는 "지난 총회에서 결론이 난 사안"이라는 명목으로 건의안심사위원회 단계에서 기각하며 본회의 상정조차 차단해 버렸다.
강단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과 십자가 복음이 선포되면서도, 제도와 행정의 이면에서는 WCC의 다원주의 노선과 세속적 이념이 여과 없이 스며들도록 방치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판 '다메섹 제단'을 성전 마당에 들여놓은 아하스의 위선과 무엇이 다른가. 아하스가 앗수르와 아람의 강대함에 압도되어 하나님의 전을 훼손했듯, 교계 지도자들은 '에큐메니칼'이라는 거창한 명분과 세속적 일치의 유혹에 눈이 멀어 복음의 절대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경고한다. 앗수르를 의지하고 다메섹의 신들을 좇았던 아하스의 결말은 구원이 아니라 파멸이었다는 것을.
다메섹의 화려한 제단과 수건에 싸인 므나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왕으로 모시고 있는가? 세상의 거대한 권세와 포용이라는 화려한 도면에 매료되어 하나님의 성전 문을 내어주고, 주님이 맡기신 진리의 므나를 수건 속에 썩히고 있지는 않은가?
기대가 무너진 암담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세상의 다메섹이 아닌 골고다의 십자가 아래서 수건을 걷어내고 잃어버린 복음의 본질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한다.
결국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은 자명하다. 교단의 제도와 행정이 복음의 절대적인 진리를 수호하는 울타리가 되도록, 끊임없는 제도적 개혁과 묵직한 영적 성찰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눈앞의 세속적 연합이라는 명분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골고다 십자가의 배타적인 사랑과 순수한 진리 위에 다시금 단단한 복음을 세우는 것, 그것이 말세를 살아가는 오늘날 성도가 감당해야 할 진정한 사명이다.
이 완구 원장.(익산 맑은샘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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