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무스 (아도니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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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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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서울 대회를 바라보며 애통하여 쓰는 글-
“이제 나는 아도니스를 애도하나니,
아름다운 아도니스는 죽었도다.
사랑의 종들이 그 소리를 메아리치도다.
잠자리를 거두소서, 아름다운 시프리스여,
보라, 보라 당신의 고통이 있으니,
검은 옷 입고 가슴을 치소서;
온 천하에 부르소서: ‘사랑스러운 아도니스여, 죽었도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Bion이 쓴 애가 The Lament for Adonis 중에서)
에스겔 8장에서 선지자가 본 광경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전은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였는데, 그 안에서 이방의 신을 향해 울며 애곡하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듯이 보였지만, 본질은 우상 숭배였던 것이다.
예배라는 외형은 남아 있었으나, 그 중심에는 하나님 대신 우상인 담무스가 않아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 모습을 “가증한 것”이라고 부르셨고, 결국 성전을 떠나 하나님의 영광을 거두셨다.
담무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풍요의 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의 어머니이자 배우자로 여겨졌던 세미라미스와 함께 모자 숭배의 전통이 형성되었다. 이 신화는 바벨론에서 시작되어 여러 문화권으로 전해졌다.
가나안과 페니키아에서는 ‘담무스’가 ‘아도니(주님)’로 불리며, 그리스 세계에 전해져 ‘아도니스(Adonis)’로 알려졌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는 젊은 신으로, 사냥 중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주기를 가진 신으로 등장한다. 이는 본래의 담무스 신화가 그리스 문화 속에서 변형된 형태이다.
이 모티프는 다시 이집트에서는 이시스와 호루스, 로마에서는 비너스와 큐피드로 변형되었고, 결국 ‘어머니와 아이’ 숭배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이런 어미와 아들 숭배의 모습은, 겉모습은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인간의 본능적 종교심을 이용한 우상 숭배의 체계였다.
이 전통은 훗날 가톨릭 안에서도 발견된다.
가톨릭은 교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라 고백한다. 그러나 실제 신앙의 중심이 예수님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다르다. 수많은 신자들이 예수님보다 마리아를 더 가까이 여기며, 그녀를 향해 기도하고 의지한다. 마리아는 ‘하늘의 여왕’이라는 칭호로 불리며 사실상 중보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라 선언하지만(딤전 2:5), 가톨릭은 다른 중보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손에 들린 성화 속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습은 겉으로는 기독교적 도상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세미라미스와 담무스 숭배이다. 이름만 예수와 마리아라 붙였을 뿐, 실제로는 고대 우상 숭배를 기독교의 옷으로 포장해 둔 것이다.
이 모습은 이제 가톨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개신교회 역시 비슷한 위험 속에 있다.
내일부터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가 주최하는 WEA 대회가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사랑의교회에서 열린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 같은 단체들은 겉으로는 기독교 연합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가톨릭과의 일치, 더 나아가 타종교와의 연합까지 추구하는 혼합주의 운동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연합은 진리 안에서의 연합이 아니라, 진리를 희석시키고 각자의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이름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결국 “여호와도 섬기고 바알도 함께 섬기라”는 메시지를 교회 안으로 들여놓는 것과 같다.
이런 운동에 동조하는 교회에는 외형적으로는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있고, 찬송이 울려 퍼지고 기도가 이어지며, 성경이 봉독되고 설교가 선포된다. 그러나 본질은 이미 변질되어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상에게, 담무스에게 애곡하는 자리와 다르지 않다. 에스겔이 본 성전에서 담무스를 위하여 울던 여인들의 모습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영광을 우상과 나누지 않으신다.
교회가 복음의 진리를 타협하고 혼합주의와 다원주의를 받아들일 때 성령께서는 그곳에 역사하지 않으신다.
성령의 능력을 잃은 교회는 결국 사탄의 장악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예배당은 그대로 남아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예배를 드리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가증한 우상에게 바쳐진 예배, 즉, 담무스를 위한 애곡이 된다. 이런 교회는 겉모습은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심각하게 들어야 한다. 우리의 예배는 정말로 오직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영과 종교 혼합의 영에게 이끌려 가면서도 스스로는 하나님께 드린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에스겔 시대의 성전이 담무스를 위한 애곡의 장소가 되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교회가 WCC와 WEA라는 이름으로 담무스를 섬기는 자리로 변질되고 있지는 않은가?
“너는 다시 그들이 행하는 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겔 8:13).
이 말씀은 오늘 우리 시대를 향한 엄중한 경고이다. 교회가 화려한 건물과 세련된 프로그램, 웅장한 찬양과 감동적인 설교를 자랑할지라도,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는 신앙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예배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결코 받지 않으시며, 결국 그 교회에서 영광을 거두시고 진노로 심판하신다.
지금은 교회가 깨어야 할 때이다. 종교 혼합주의와 다원주의의 달콤한 유혹을 끊어내야 하고, 가톨릭과의 거짓된 일치에 맞서야 한다. 세상의 환심을 사는 연합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 위에서만 연합해야 한다. 우리가 눈물을 흘린다면, 세상의 풍요와 쾌락을 잃은 것 때문에가 아니라, 교회가 진리를 버리고 우상에게 무릎 꿇은 현실 때문에 애통해야 한다.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던 여인들처럼 헛된 눈물이 아니라, 죄를 슬퍼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현실을 통곡하는 눈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돌아서야 한다. 오직 주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으로 다시 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의 교회 역시 에스겔 시대 예루살렘 성전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폐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완구원장(맑은샘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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