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피터슨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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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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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8일 뉴스엠이라는 신문의 오피니언 칼럼에 “유진 피터슨의 최근 행보와 동성애 문제” 라는 기사가 떴다. 이 기사는 종교전문 기자인 조너선 메릿이 유진 피터슨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기사였다. 미국장로교회(PCUSA)는 원래 동성결혼을 교단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오랜 논쟁 후인 2014~2015년에 공식 입장을 변경하여 동성 결혼을 교단적으로 허용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유진 피터슨은 그가 속해 있는 미국장로교회가 동성 결혼에 대해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조너선 메릿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 문제는 이미 논쟁이 끝난 문제이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메릿 기자는 그 대담에 이어 "만일 당신이 지금 목회를 하고 있고 교인 중에 아주 신실한 동성 커플이 있어서 그들이 당신에게 결혼 주례를 부탁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유진 피터슨에게 물었다. 피터슨은 "당연히 해야죠" 라고 답했다.
“이 기사가 나오자마자 미국 기독교계가 들썩였다. 특히 동성애 및 동성 결혼 문제로 예민해 있는 복음주의권에서 흥분했다.....(중략)....피터슨은 곧바로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그 중 최강은 미국 최대의 교단인 남침례교회 산하의 라이프웨이 서점 측에서 나왔다. 미국 최대의 기독교 서적 및 물품 유통사인 라이프웨이 대변인은 피터슨의 모든 저서를 전국의 서점에서 빼겠다고 성명을 냈다....(중략)...놀랍게도 피터슨은 그 이튿날 즉 7월 13일 오후에 자신의 입장을 워싱턴 포스트에 전달했다. 이 발표문에서 피터슨은 동성 결혼을 집례 하겠다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면서 자신은 결혼과 성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인터뷰 과정 중에 기자의 유도심문에 넘어 가서 실언을 한 것처럼 상황을 설명했다.”
이 기사를 보면, 유진 피터슨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인터뷰를 하다가 큰 서점에서 유진 피터슨의 책을 모두 빼버리겠다고 하자 그 다음날 바로 입장을 바꿔서, 자기를 인터뷰한 기자가 유도 질문을 하여 실언을 한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목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자신의 이득과 관련되자 입장을 쉽게 뒤집어 버릴 뿐 아니라, 자기의 책임을 여기자의 탓으로 돌리는, 참으로 실망스럽고 비겁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기자의 유도 질문으로 돌리는 유진 피터슨의 해명을 보면, 문득 창세기에서 "그 여자가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말하며 책임을 전가하던 아담의 모습이 떠오른다.
유진 피터슨, 헨리 나우웬, 달라스 윌라드, 토마스 머튼, 리차드 포스터 등은 흔히 기독교 영성가로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자만, 이들은 관상기도, 레노바레 운동을 하는 이단적 성향의 사람들이다. 유진 피터슨 자체가 뉴에이지 사상에 물든 이단적인 사람이며, 동성애 옹호론자이기도 하다.
사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신비주의 영성은 이후 릭 워렌(Rick Warren)을 비롯해 레너드 스윗(Leonard Sweet), 브라이언 맥클라렌(Brian McLaren), 토니 존스(Tony Jones) 등이 주도한 ‘이머징 처치(Emerging Church)’ 운동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이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적 조류에 편승해 동양의 신비종교적 요소를 기독교와 접목하고, 이를 ‘초월적 영성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온 인물들이다. 즉, 유진 피터슨이 추구한 영성의 본질은 성경적 복음이 아니라, 혼합주의적 신비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의 부적절한 처신을 넘어, 그가 남긴 유산들이 현대 교회 강단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그가 일상의 언어로 편찬했다는 의역 성경 <더 메시지>(The Message)는 성경의 핵심 교리를 왜곡하고 뉴에이지적 신비주의 사상을 투영한 위험한 텍스트이다. 이에 대해 일찍이 튤립 신학 연구원의 김명도 교수를 비롯한 국내외 개혁주의 신학계는 <더 메시지>에 내재된 신학적 변개와 뉴에이지 오컬트 사상의 연관성을 엄중히 경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강단에서 이를 전통 성경과 동일한 권위로 무분별하게 인용하는 목사들 때문에 성도들을 심각한 미혹의 길로 빠지고 있다.
필자가 전에 다녔던 익산 모 감리교회 정OO 목사도 유진 피터슨의 더 메시지를 "성경"이라고 하면서 전통 성경과 동일한 권위로 설교 시간에 자주 인용했었다. 그러자 영생교회의 성경읽기 모임 회원들이 앞으로는 전통 성경을 읽지 않고 더멧시지로 성경읽기를 하겠다고 모든 교인들 앞에서 자랑하듯 선포하는 일까지도 생겼었다. 당시 필자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는데, 워낙 충격이 컸던 터라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진 피터슨의 "더 메시지(The Message)"는 현대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쓰인 의역 중심의 성경 번역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성경을 일부러 왜곡한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뉴에이지 사상이 배경에 녹아 있어 무분별하게 읽으면 무척 위험한 책이다. 더 메시지에 숨어 있는 여러 위험한 요소들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가장 문제가 되는 두세 가지만 짚고 넘어가려 한다.
1. "Lord Jesus"를 "Master Jesus"로 대체한 문제
유진 피터슨의 <더 메시지>(The Message)는 성경 번역이라기보다는 현대인의 일상 언어로 성경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역본이다. 신약은 1993년에 출간되었고, 2002년에 신구약이 모두 출간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Lord Jesus"(헬라어: ho Kyrios Iesous)라는 표현은 모두 "Master Jesus"로 대체되었다. 신약성경에 "Lord Jesus"는 총 115번 등장하지만, <더 메시지>에서는 단 한 번도 이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다고 김명도 교수님은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문제일까?
신약에서 Lord (Kyrios, 주)는 단순히 '주인'이나 '선생님'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YHWH)를 번역할 때 사용된 표현이며, 초대교회는 바로 이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함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만물의 주권자이심을 고백하였다. 따라서 "Jesus is Lord(예수는 주이시다)"는 단순히 예수님을 존경하는 스승으로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의 신성과 절대적인 주권을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선언이다.
반면 "Master"는 일반적으로 영어권에서 "주인" 또는 "선생님"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뉴에이지 운동이나 신지학, 신비주의 운동에서는 영적 지도자나 영매자, 무당, 도가의 도사를 지칭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호칭이다. 예를 들어, "요가 마스터" 또는 "젠 마스터", 혹은 "어센디드 마스터(Ascended Master)" 와 같은 표현에서 나타나는 의미를 염두에 둘 때, "Master Jesus"라는 번역은 심각한 신학적 오해를 초래할 수 있는 말이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천상천하의 대주재"(Lord)라는 개념을 팍 약화시키는 표현인데, 유진 피터슨은 의도적으로 Lord jesus라는 말을 다 빼버리고 "Master"로 대체한 것이다.
2. 주기도문에 포함된 뉴에이지 오컬트 사상.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첫 대목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Hallowed be thy Name)”이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이 지닌 절대적인 거룩함을 경배하며, 피조물인 우리가 삶을 통해 그 거룩함을 드러내겠다는 신앙의 결단이다. 즉, 행동의 주체는 피조물이다. 그러나 피터슨은 이를 “당신이 누구인지 드러내소서(Reveal who you are)”로 바꾸어 놓았다. 기도의 주체가 인간에서 하나님으로 전도된 것이다. 마치 피조물이 창조주를 향해 “당신이 하나님임을 우리에게 똑똑히 증명해 보라”고 요구하는 인본주의적 독단이자, 기독교의 핵심 가치인 ‘거룩(Holiness)’을 거세해 버린 치명적인 왜곡이다.
더욱 가공할 만한 왜곡은 주기도문 후반부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에서 발생한다. 피터슨은 이 거룩한 선언을 “Set the world right. Do what's best. As above so below”로 번역했다.
김명도 교수님이 지적하듯이, 여기서 등장하는 "As above so below"라는 표현은 뉴에이지 운동의 철학적 문구로 알려져 있다. 이 표현은 고대 이집트 영지주의자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가 쓴 신비주의 문헌 Emerald Tablet에서 유래하였는데, "하늘과 땅의 구별이 없고 모든 것이 하나"라는 단일론적 세계관(Monism)을 함축한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라는 호칭 자체도 참람하다. "세 번 지극히 위대한 헤르메스"라는 뜻으로, 이름 자체가 교만 덩어리이다. 로마 교황의 삼중관(Triregnum)처럼, 마치 하나님의 자리까지 오르고 싶어 하는 교만의 극치를 연상하게 하는 이름이다.
"As above so below"라는 문구는 하늘은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초월적 공간이며 땅은 인간의 타락으로 고통받는 피조 세계라는 기독교의 기본 세계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문구다.
오늘날 타로 카드, 점성술, 프리메이슨, 그리고 현대 뉴에이지 운동이 “내 안의 우주적 에너지를 깨우라”고 속삭일 때 사용하는 이 ‘시그니처 주술문’이, 어떻게 예수님이 가르치신 가장 거룩한 기도문 한복판에 버젓이 삽입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단순한 어휘 선택의 실수가 아니라, 유진 피터슨의 사상적 배경이 뉴에이지적 신비주의에 깊이 오염되어 있음을 방증하는 결정적 증거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며 이 땅의 죄악을 직시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더 메시지>는 이를 “세상을 바로잡고 최선을 다해 달라”는 모호한 도덕주의로 파편화시킨 후, 오컬트적 자연주의 문구로 버무려 버렸다. 이로 인해 강단에서 이 책을 무분별하게 낭독하는 목회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도들의 여호와 하나님 관(觀)을 무너뜨리고, 창조주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정체를 밝혀야 하는 내재적 에너지로 축소시키는 영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교회의 강단은 인간의 귀를 즐겁게 하는 ‘이야기책’을 읊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정밀하게 보존된 정통 성경의 권위 위에서만 올바른 분별력이 자라날 수 있다. 친근하고 부드러운 언어라는 달콤한 덫에 걸려 한국 교회의 강단과 성도들의 영성이 이교도적 사상에 잠식당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눈을 들어 텍스트 이면의 정체를 분별해야 한다.
이제라도 강단에서의 <더 메시지> 인용을 즉각 중단하고, 시대를 분별하는 바른 교리와 성경의 권위로 돌아가는 것만이 영적 미혹의 시대에 교회를 지키는 길이 될 것이다.
이완구 박사 (익산 맑은샘내과 원장, 전 영생교회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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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현님의 댓글
- 서석현
- 작성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입니다.
관상기도나 명상 운동이나 신사도주의나 신비주의 체험 등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고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배우는게 기독교의 영성은 아니라고 봅니다.
바른 영성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르게 공부하고 바르게 해석하고 바르게 적용하고 바르게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의 말씀 한절 한절을 공인된 주석서를 놓고 비교하고 검토하면서 성경의 의미를 알아가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나 꿈이나 환상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기도 하셨지만 예수님이 오신 신약시대에는 그 모든 하나님의 뜻이 성격 66권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정통 교회의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이나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검증되지 않은 외국 서적 번역본이나 국내 서적의 내용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자신이 잘못 알거나 잘못된 내용을 남에게 전달하고 가르쳐서도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고 그 수단은 오직 성경일 뿐이지 다른 것은 없습니다.
목사는 강대상에서 성경에 근거한 바른 진리만을 선포해야 하고 성도들은 목사의 설교를 듣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의심이 들면 설교하신 목사님께 물어도 보고 스스로도 공부하고 찾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많은 이단과 사이비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왜 이렇게 이단과 사이비가 많아졌는지 그 책임에 있어 이 땅의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저 또한 자유롭지 않음을 회개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신앙을 갖고 바른 영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방법이 있을 테지만 제 생각에는 이적이나 표적이 아닌 오직 성경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전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쫒아내고 이적을 보인다고 할지라도 성경에 근거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모든 것은 헛된 것입니다.
이완구원장님의 글을 읽으면서 정통 교회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죄송스러움에 다시금 제 자신을 뒤돌아보고 성찰합니다.
그래도 힘을 내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성경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행하는 목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유진 피터슨의 더 메시지라는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시간이 주어지는대로 읽어 보겠습니다.
기독교의 바른 진리의 길을 열어 가시기를 애쓰시는 원장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전남 고흥 풍류교회 서석현목사입니다.
이완구님의 댓글
- 이완구
- 작성일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기독교의 바른 영성은 신비주의적 체험이나 감정이 아니라, 오직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신실한 관계를 맺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라는 점에 깊이 공감합니다.
이 시대를 안타까워하시며 목회자로서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시는 목사님의 겸손하신 고백과 바른 말씀을 향한 열정에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바쁘신 목회 일정 중에도 늘 말씀의 파수꾼으로서 강단을 지키시려는 목사님의 수고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도 한국교회가 바른 신학과 말씀 위에 바로 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현장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늘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